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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결혼이야기

호세아의 결혼, 사랑 없는 언약인가? -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사랑의 에세이

세아서를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호세아에게 창녀인 고멜과 결혼하라고 명하신 장면 때문이다. 현대의 도덕 감각과 인간적인 상식으로 보았을 때,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처럼 느껴진다. 더 나아가 어떤 기독교신앙 유투버들이나 사람들은 이 본문을 근거로 "사랑이 없어도 결혼할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호세아 이야기가 가진 깊이와 의도를 매우 피상적으로 읽는 태도이며, 하나님의 성품과 언약을 오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호세아는 사랑 없는 결혼을 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억지로 현대의 연애나 결혼에 적용하려고 하지만, 그런 해석은 자칫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왜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깊은 사랑 때문에, 그들이 끊임없이 배신하더라도 다시 품으시려는 하나님의 성품을 호세아의 삶을 통해 보여주셨다. 호세아는 사랑 없이 결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인간적인 감정을 넘는 사랑을 살아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호세아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깊은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배우자의 불륜이나 신뢰를 저버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랑을 지키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물론 이것이 배신당한 사람은 모두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결코 쉽거나 일반화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호세아는 그 선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호세아가 보여준 사랑은 감정의 소모가 아니라, 성품을 보여주는 단면이었고, 헌신의 사랑이었다. 그것은 고통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사랑이 단지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은 성품의 표현이라는 것을 드러내준다.

 

단순한 결혼이야기가 아닌 호세아서의 결혼이야기 

호세아의 결혼은 단순한 개인의 결혼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끈질기며, 배신당해도 포기하지 않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그분을 떠나 우상과 타협했다. 그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부르고, 용서하고, 새 언약을 맺으시기를 원하셨다. 호세아는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낸 선지자였다.

 

호세아 3장 1절은 이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너는 또 가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여인, 간음한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니라. 이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사랑하심 같으니라." 이 명령의 중심에는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단순히 호세아에게 사랑 없이 다른 남자와 함께 한 여인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라고 명하셨다. 이는 호세아가 감정 없이 순종한 결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깊은 사랑을 살아내야 했던 결혼이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언약은 본질적으로 계약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며,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계시기 위한 자기-헌신이자 자기-현현(자신을 드러냄, 자기자신)이다. 언약은 거래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기대하시며 언약을 맺으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상대방에게 주시며, 사랑을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먼저 사랑하셨고(Rom 5:8), 그 사랑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조건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배신하더라도 다시 품으시는 사랑이다.

 

이러한 본문의 메시지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때때로 거북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성경이 윤리적 기준을 제시해주길 기대하고, 모든 인물들이 본받을 만한 도덕적 모델이길 바란다. 그래서 성경 속 인물의 행위를 다른 사람에게도 기대하고, 그 기준으로 관계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경에는 때로 행동이 모범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가 메시지인 경우가 있다. 호세아의 결혼은 그런 대표적인 예다. 그는 상징적 사명을 부여받은 선지자였으며, 그 고통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냈다. 따라서, 호세아의 결혼을 모든 사람에게 주는 교훈으로 해석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특정한 선지자에게만 주신 상징적인 소명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삶이 아닐 수도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다른 소명을 주실 수 있으며, 당신의 삶에는 또 다른 방식의 사랑과 헌신이 요청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호세아의 이야기는 오히려 인간의 기대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보여주는 신학적 상징으로 읽어야 한다. 본문은 사랑의 윤리적 실천보다 더 깊은 차원, 곧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계시로 작동한다. 당신에 주는 메세지는 어떤 것인지 스스로 의미부여 해야한다. 

 

 

우리는 이 본문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비로소 대면하게 된다. 호세아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사랑이 없어도 결혼할 수 있다”가 아니라, “사랑은 때론 배신당하고도 다시 선택하는 헌신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원형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