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노아의 기원과 역사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에서 우리 식탁으로 찾아온 건강한 식재로 퀴노아를 소개합니다.
퀴노아의 원산지는 어디일까?
볼리비아
퀴노아는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인 볼리비아 알티플라노(Altiplano) 지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해발 3,000~4,000m 이상의 고지로, 퀘추아족(현대 잉카족)과 아이마라족(잉카 이전부터 존재한 민족)이 사는 지역이다. 퀴노아, 감자, 기타 고산 작물들이 수천 년 전부터 이곳에서 재배되어 왔다. 북쪽 티티카카 호수 주변은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추운 기후다. 이곳에서는 감자, 보리, 라마, 돼지, 젖소, 심지어 기니피그(식용)가 함께 재배된다. 하지만 퀴노아가 주로 자라는 곳은 남쪽의 건조하고 추운 알티플라노 지역으로, 대부분의 작물이 자라기 힘든 환경입니다. 퀴노아는 가뭄, 염분, 바람, 우박, 서리까지 견딜 수 있는 독특한 생명력을 지녀 이런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현재까지 역사적 증거에 따르면 퀴노아는 기원전 3,000년에서 5,000년 사이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의해 처음으로 길들여졌을 가능성이 있다. 칠레의 타라피카, 칼라마, 아리카 지역과 페루 여러 지역의 고대 부덤에서 퀴노아가 발견된 바 있다.
잉카인들은 퀴노아를 "모든 곡물의 어머니(Chisaya Mama)"라고 부르며 신성한 작물로 여겼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잉카 황제는 매년 직접 첫 퀴노아 씨앗을 심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잉카인들의 주요 식량
페루와 볼리비아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도착했을 때 퀴노아 재배는 이미 기술적으로 잘발달되어 있었으며, 잉카 제국 내부 뿐 아니라 그 외부 지역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스페인 탐험가 페드로 데 발디비아 (Pedro de Valdivia, 1497 ~1553)는 퀴노아를 보고 원주민들의 식량으로 기록했고, 스페인 왕실 회고록에는 퀴노아를 지구상에서 두번째로 재매된 곡물로 묘사하며, 조, 또는 짧은 쌀알을 닮았다고 언급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퀴노아를 유럽으로 가져왔는데 긴 시간동안 습기로 인해 씨앗이 죽어서 발아되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퀴노아는 그 당시 옥수수보다 훨씬 풍부하게 자랐으며, 사람의 이동에 따라 퀴노아가 함께 따라 다닌다고 기록에 남아 있다.
잉카 시대 사람들은 고산지대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도 놀라운 체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그 비결 중 하나가 "코카 잎과 불에 태운 퀴노아 재(ash)"를 볼 안에 머금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퀴노아 재의 알칼리 성분이 코카의 알칼로이드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체내에 흡수되도록 도와줘 산소 흡수 능력을 높여줌으로써 에너지를 증진시키고, 피로회복을 빠르게 했다. 이 방법은 현대 볼리비아 주민, 운동선수 사이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스페인은 1545년 안데스 산맥 인근 지역에서 은광을 발견하고, 현지 원주민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했다. 이후 백인 지주들이 ‘아시엔다(hacienda)’라는 대농장을 운영하며 원주민들의 자율적 식량 체계를 무너뜨렸습니다. 다행히 퀴노아 재배 지역은 극한의 기후 덕분에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 공동체 중심의 퀴노아 농업은 안데스 산악지대 일부 지역에서 비교적 독립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각 가정은 필요에 따라 테라스식 밭을 배분받았고, 수확 후에는 토양 회복을 위해 수년간 땅을 쉬게 했다. 이렇게 공동체 중심의 자급자족형 농업이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퀴노아는 오랫동안 ‘가난한 인디언의 음식’으로 여겨지며 차별받았고, 심지어 건강식품으로 여겨지지도 않았습니다.
1970년 부터 시작된 변화
1970년대, 미국의 냉전시대 농업 원조 정책이 남미에도 적용되면서, 볼리비아에도 트랙터와 화학비료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산비탈에서 수작업으로 키우던 퀴노아가, 트랙터 사용을 위해 평지인 라마 방목지로 이동하고, 토양은 황폐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미국의 식량 원조로 값싼 밀가루가 대량 유입되면서, 볼리비아 사람들의 식단도 점차 서구식으로 바뀌어갔다. 전통적인 건강식품은 외면받았고, 가공된 빵과 면이 주식이 되었다.
1980년대 부터 퀴노아가 본격적으로 미국에 소개되기 시작하며 퀴노아가 수출되었고, 2000년대 들어 슈퍼푸드로 각광받으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2008년에는 톤당 $800, 2010년에는 $1300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퀴노아를 더 많이 재배하기 위해 농민들은 라마를 팔고, 더 많은 땅을 퀴노아 재배지로 바꾸었다. 하지만 이는 전통적인 순환 농업 구조를 깨뜨리고, 토양 황폐화와 유기비료 부족을 초래했다.
퀴노아의 딜레마
퀴노아의 인기는 동시에 논란도 불러왔습니다. 전 세계적인 수요 증가로 인해 가격이 치솟으면서, 정작 퀴노아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자기가 키운 작물을 먹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퀴노아로 부를 축적한 일부 사람들은 도시에서 돌아와 농사를 시작했지만, 이들은 지역 공동체의 규칙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지역 주민들은 퀴노아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마을 학교나 화장실 등 지역 시설에 투자할 것을 요구하는 ‘공동 규칙’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농민들은 자기가 키운 퀴노아를 먹지 못합니다. 대신 밀가루나 흰쌀 같은 값싼 정제 탄수화물로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 많습니다.
퀴노아가 비싼 이유
퀴노아는 씨앗이 익는 시기가 균일하지 않아 기계로 수확하기 어렵습니다, 안데스 산맥은 고산지대로 경사가 심해 기계 집입이 어려울 뿐 더러 아직도 공동체 중심의 노동방식이 남아 있습니다.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문화적 전통과 공동체 유대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아직도 기계보다 전통적인 수작업으로 씨앗을 수확하는 농가들이 많다. 손으로 수확하면 비용도 올라간다. 보통 들깨나 참깨 처럼 잎이 모두 마르고 씨앗만 남은 상태에서 수확하는 '건조 수확'의 방법을 사용하는데, 퀴노아는 씨앗이 잘 떨어지고 터져 나가버리기 때문이다.
지금도 볼리비아, 페루의 고지대에서는 조용히 퀴노아를 손으로 수확하는 농부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손끝에서 이어진 수천 년의 생명력과 지혜가, 우리의 식탁 위 건강함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당신이 먹는 한 숟갈의 퀴노아는,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지켜온 어떤 문명의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퀴노아는 단순히 ‘건강한 슈퍼푸드’가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가진 지역의 생존과 문화, 세계 경제 구조가 얽힌 복잡한 상징입니다. 건강을 위해 퀴노아를 먹는 것도 좋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까지 알고 먹는다면 더 가치 있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아직 퀴노아를 안 드셔봤다면, 이 글이 그 역사를 알고 요리에 활용해보고 싶은 마음을 자극했길 바랍니다.
영양도 풍부하고, 조리도 간단하며,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슈퍼푸드 퀴노아, 이제 여러분의 식탁 위에 올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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