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떻게 결혼하게 됐을까? 배우자 이런 남자 피해라. (1) 자기애가 높은 남자
이건 순전히 나의 기준이다. 나는 크리스천을 대상으로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세상 사람이 각각 다르듯 결혼도 가지 각색이니.. 일반적인 기준으로 말하는 것은 위험하고..꼰대가 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 교회에서 자랐지만, 한국 교회의 가르침을 절대적으로는 따르지 않았다. 교회의 가르침과 다르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해 주시고 확신을 받았다면 나는 그것을 따랐다. 그냥 참고용으로만 보시면 좋겠다.
1. 자기 중심성, 자기애가 큰 사람
절대 못고치는 못된 습성, 자기애
이건 남자뿐 아니라 남녀를 막론하고 자기애가 큰 사람은 좀 어렵다…자기애는 자존감과 다른 것이다. 나르시스트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다른 이름이다. 자기애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조금 결혼생활에 어려움이 많이 않을까 판단했다. 내 경험상. 자기애는 한마디로 나 잘났다는 것이다. 자기애가 뭔지 모르겠는 분들을 위해 한마디로 표현해 보겠다.
나 이런 사람이야.. 내가 어떤 사람인데…알아서 기어..
기죽지 않는 남자와 남성성을 중시하는 한국교회..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자매들에게 자기애가 높은 남자들은 만나지 않는게 좋겠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몇몇 한국 교회에서 종종 남성은 남성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말하면서 남자가 먼저 나서서 의사 결정을 해야하고, 남자는 기죽으면 안된다는 듯한 말을 하는 기독교인들을 본다. 또한 교회에서도 결혼에 관한 강의를 한다고 하면서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성경적인 남자다움이 뭔지 말하지 않는다. 여자다움이 뭔지 말하지 않는다. 그럼, 뭘까? 한국사회에서 말하는 남성다움, 여성다움이라는 말이겠지… 아니,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남성다움 여성다움?? 나는 이것이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크리스천의 삶에서 사회에서 습득된 남성성 여성성 보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 성령과 말씀으로 인생가운데 빚어진 변화된 인격이 내게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별한 아내의 행복도가 오르는 유일한 나라, 한국
우선 남성성/여성성을 강조하는 한국교회를 말하기 앞서 먼저 말하고 싶은게 있다. 혹시 이거 아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죽은 후 혼자된 아내의 행복도가 오르는 나라는 전세계에 오직 한국 뿐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삶의 행복도가 올랐다는 이 오싹하고 기괴한 통계결과는 무엇을 말할까?? 그리고 그런 나라는 전세계에서 한국 뿐이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나는 이것이 한국사회가 그동안 병적인 남성성을 강조해 왔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기가 죽으면 안된다.
남자는 자존심이고 인정이다.
남자는 인정을 받고 싶으면, 인정을 받을 만한 존재가 되려고 자신을 훈련하고 난 후 그에 맞는 인정을 요구해야한다. 기가 죽으니 기를 죽지 않게 하기 위해 남자를 위하라니..그 동안 한국은 남자는 기가 죽으면 고장난다고, 여자들은 남자의 기를 살려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여성으로 하여금 남자들에게 인정할 만한 상황이 아니어도 어떤 상황에도 기를 살려주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많았다. 그래서 한국 여자들은 때론 아닌 것 같아도 꾹 참고 무조건적으로 우리 남편 잘났다며 기를 살려주는 문화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결혼 생활은 그런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엔 결혼 생활은 존중, 대화이며 조율이다. 결혼은 손익계산서 파악이 어려운 재무재표다. 그런데 자기애가 높은 사람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쉽게 자신에게 스스로 만들면서 뭔가 원만한 문제 해결..이거 잘 안된다.
나도 내가 이런 말하는게 웃기지만, 한국인 남자친구를 만나본 적이 없다. 5년 3년 1년을 만났던 남자들 모두 한국피라고는 1도 없는 사람들이 었다. 그런데 이 들은 나의 남자형제들 및 내가 대학을 졸업할때까지 만나왔던 한국 남자와는 달랐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다는 거 나도 알고, 외국에도 이상한 놈들 많다는거 나도 알고 경험해 봤다. 뭐 내가 그동안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치자
놀랐던게 내 남자친구들 모두 “여성의 위대함??” 에 대한 것을 한국에서 자라온 나의 눈에는 이상할 정도로 교육받는다. 다른 여자에게는 안그래도 내가 모시는 여자에게는 안그런다. 그것은 퐁퐁남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내가 만난 남자친구들에게 있어서 “아내를 편안하게 해주고 아내를 위할 수 있는 남성의 능력은 자랑할만하고, 자신의 영광이다. 심지어 겸손한 척 한다고 여자를 낮추고 남자를 높이는 말을 하면, 바로 내 말을 막고 여성은 가장 위대한 피조물이라고 강하게 말하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자라온 내 눈에는 세뇌교육받았나 싶을 정도로…
결혼할 남편도 첫번째, 두번째 나와 단둘이 있을때 .. 나한테 사과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 굳이 사과할일이 아닌데도 나에게 석고 대죄 하듯이 민망할 정도로 사과했다. 나라면 자신이 굽히면서 그렇게 사과하지 않을 것 같은데.. 사실 난 남편의 사과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 기분이 풀릴 때 까지 미안하다고 해서 처음엔 불편했을 정도로.. 아무튼 그렇게 사과하는 모습에 자신의 자존심/ 나의 이익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구나 생각해서 참 인상적이었다.
자기애가 큰 남자를 가능한 피해야 할 성경적인 이유
self-centeredness of sinful human heart
예수님을 따르며 사는 삶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인간의 죄성은 바로 “자기중심성, 자기애”라고 생각한다. 복음이 나의 존재라는 집에 가장 중심이 되고, 예수님이 나라는 존재의 머리가 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내 자아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내 뜻대로 살면서 죄를 엄청나게 지었구나.. 내 자아가 원하는대로 살면 그 결과물은 다 똥이고 죄이며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들 뿐이구나.. 라는 것이었다. 인간에게서는, 내 속에는 선한게 나올 수 없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기애가 높은 사람은 이 것이 안된다. 내 자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에서 나의 사랑의 근원이 오직 내 배우자 뿐이라면.. 곧 슬픔이 찾아오게 된다. 결혼생활의 내 사랑의 근원은 배우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어야 한다. 그리고, 원만한 결혼생활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내 안에 창조하신 어떤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내 자아를 중심에서 꺼내고 그 자리를 내 앞에 있는 타인, 배우자의 필요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에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사랑은 자기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Love, it is not self-seeking
고린도 전서 13장 4절-5절
성경에서 말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생각
1. 남편은 머리니까 결정은 남자가 반드시 해야하고…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남편들이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에베소서 5장 25절
남편이 머리 됨은 남편들이 지시하고 아내의 복종함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 남편의 권위는 그 권위를 인정받아 내가 좀 더 편하게 살고, 자신의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에베소서 5:23 라고 하는데.. 머리 된다는 것은 단순히 모든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 했다. 머리 된다는 것의 뜻을 아는가?? 머리 된다는 것, 바로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 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사결정은 반드시 남자가 하고 남자가 최고다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한다. 자기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서 어떻게 사셨는가?성경이 말하는대로 따라 사는 모습이 성경에서 말하는 바람직인 남성성이다. 바로 1도, 하나도, 0도 자신의 기쁨을 위하지 살지 않고, 타인, 아내의 기쁨을 위해 사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남편의 머리됨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로마서 13장 2-3절에도 나와 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하지 않으셨나니..
로마서 5장 3절
예수님은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남편은 예수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함 같이 아내를 사랑해야한다. 곧 자기 기쁨을 위하지 읺고 아내의 관심과 기쁨을 위해 사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럴때 아니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버리고 사랑하는 권위에 순종할 것이다.
아내가 무조건적으로 순종할 존재는 남편아니다. 오직 하나님 뿐
아내는 남편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무조건적인 순종은 남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만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우리가 무조건 적으로 순종할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뿐이라고 말한다.
”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행전 5:29 KRV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무조건적인 순종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 남편의 결정과 행동에는 순종하면 안된다. 이것은 비 성경적이다. 예를 들면 남편이 마약을 판다던지, 또는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다면 아내는 남편은 용서하되… 용서가 불의를 눈감으리는게 아니라는 것 아시죠? 법적으로 남편에게 합당한 벌을 받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남편이 나를 때리고 가정폭력을 저지르는데도 그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나쁜 일을 하게 놔두는 것은 돕는 베필의 모습이 아니다. 남편이 이기적으로 가정에서의 머리의 권위를 남용한다면, 아내는 동의하면 안된다. 남편에게 headship을 훈련하도록 요구 해야 한다. 성경에 따르면 남편은 머리된 권위를 자신의 기쁨과 편안함을 위해서가 아닌 아내의 기쁨을 위해 머리된 권위를 사용해야 하라고 말한다. 남편은 스스로 머리 되지 못한다. 바로 아내의 인정과 순종이 따라와야 자신이 가정의 머리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라면 스스로 스스로된자가 되겠지만 인간인 남자는 그게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에 찬양하고 복종한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그분의 사랑, 그분의 선하심을 찬양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무조건적인 복종과 순종을 하는 것이다. 남편은 인간이다. 인간은 또 다른 인간보다 더 큰 능력을 보여줄 수 없다. 또 내 옆의 인간보다 더 큰 사랑을 보여줄 수 없다. 아내는 남편의 합당한 리더쉽에만 복종해야 한다. 남편은 리더쉽을 인정 받고 싶다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리더쉽을 배우고 훈련하라. 아내는 예수님과 같이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을 인정하고 그 리더쉽에 복종하며 기꺼이 가정의 머리로서 존중하고 사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