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결혼이야기

우린 어떻게 결혼하게 됐을 까? 일 대신, 사람을 얻었다. (1)

우롱TEE 2024. 2. 3. 23:08

하나님께서 결혼에 대해 말씀하시고, 내 삶에 많은 변화가 일어 났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다. 하나님께서는 내 인간 관계 속에 개입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크심을 나타내시기 시작했다.

남는 방을 세 놓기로 결정하다
나는 혼자 살지만 침실이 두개인 집에 산다. 작년 5월에 룻기 말씀을 통해 나에게 “내가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리라”라고 말씀 해 주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나는 남는 방을 세 놓기로 결정했다. 이 말씀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우발적으로, 상황에 의해 결정한 것이었다. 코로나 이후로, 가스비가 엄청나게 올랐으며 집에 난방을 자주 하지 않았고, 온수만 사용했을 뿐인데, 나버지 방을 세 놓아야 비용이 감당 될 것 같았다. 나는 혼자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고 이것은 곳 집이다. 이 곳을 누구와 함께 쓰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굉장한 변화 였다. 하지만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오랜 시간 같이 있는 것은 힘들 것 같아서 시험을 위해 오는 한국인 학생들에게 한 달 또는 두달 정도 방을 빌려줬다. 외국인도 괜찮았지만.. 외국인들도 또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차라리 한국인이 나을 것 같았다.

절대, 긴장감을 놓으면 안되는 한국인들
내 경험상 한국인들은.. 그 앞에서 긴장감을 유지 해줘야 그나마 예의 있게 행동한다. 내 경험 상 모두 그랬다. 조금만 좋은 사람인 것 같이 보여주고, 마음을 풀어주면 바로 내가 어떻게 행동해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내 인생 경험 상.. 한국인은 주변 사람들의 압박이나 부정적인 피드백이 없으면 옆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예의있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우리 집에 머물다 간 사람들은 다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분은 똑뿌러지게 자기가 한 건 또박 또박 치우고, 다른 사람이 공용공간을 사용할 때 내가 했던 행동으로 불편하지 않게 해주는 분이 있는 가 하면, 어떤 분은 떠나간 자리가 아름답지 않은 분도 있었다.

어리버리했던 어떤 한국인 여학생, C가 우리집에 왔다.
그러다가 8월 여름 시험을 위해 독일에 들어온 학생이 우리 집에 있게 되었다. 그 전에는 다른 도시에서 한국인 분이 하는 민박집에 있다가 왔다고 한다. 그리고 입국할 때, 인터뷰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에 2시간 동안 잡혀 있다가 오기도 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입국시 주의점만 검색해도 알텐데… 입국할 때 명확한 입국 목적을 말하지 않고 얼버무리면 이민국 사무실에서 정확한 말을 들을 때 까지 잡혀 있게 된다. 아니 이런 것도 못 알아 보고 오다니… 또 모르는 것을 나에게 전부 물어보고 부탁하는데, 여러버 알려주려니 참 불편했다. 나를 여러번 불편하게 한게 한 두번이 아니다. 나도 여기서 살아가기 바쁜 사람이다. 니가 할 일은 니가 검색해서 알아서 하렴… 또 이후에 독일에서 어학을 하면서 시험 준비를 하려 한다면서 어학비자 발급을 위한 정보들을 스스로 검색해보지 않고 나에게 전부 물어 봤다. ㅜㅜ 나는 정보 자판기가 아니거든요… 그 정도는 검색해서 알 수 있어요. ㅜㅜ  이 학생이 나에게 끼친 피해는 이것 뿐이 아니다. 내가 방에서 내 할일을 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려 자신이 한 음식을 같이 먹자고 하는 것도 어찌나 귀찮던지.. 누군가에게서 뭔 받으면 나도 또 되돌려 줘야 하고… 난 이런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A4용지가 없으니 빌려달라고 하는 등.. 갈 수록 태산이었다.

우리집 싱크대를 태우다.
급기야 일이 터졌다. 어리버리 해 보이셔서 뭔가 일 내시겠다 싶었다. 부엌 싱크대를 태운 것이다. 싱크대 윗 판이 대리석문양의 시트지로 커버된 합판이어서 뜨거운 것을 올려 놓을 때는 꼭 냄비 받침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냥 냄비를 올려 놓는 바람에 싱크대가 타 버렸다… 독일에서는 무엇 하나 바꾸고 교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내가 원하는 때에 교체할 수 없고, 꼭 업체가 시간이 있을 때 교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시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런거에 모두 신경쓰기엔 내가 그렇게 여유있지도 않은데… 너무 골치가 아팠다. 우선 그 분에게 이 교체 비용을 내야 한다고 말씀 드린 후, 교체 방법을 생각해 봤다. 그 분은 아무 것도 모르니 내가 모든 걸 신경 써서 결정해야 했다. 도면을 그려 함께 자가 교체 비용도 알아보고, 결국은 집주인에게 말씀 드린 후 교체 방법을 논의 했다. 집주인 아저씨는 다행히도 저렴한 방법으로 교체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고 하셨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로마서 12장 17절-18절  


엉망이 된 부엌을 보고 들었던 생각
우선 부엌교체를 위해 부엌이 엉망이 되었고, 집에서 요리를 할 수 없었다. 요리를 할 수 없으니 밥을 어떻게 먹을 건가?? 그리고, 망가진 부엌만 들여다 봐도 속상해 속이 답답했다. 이걸 또 언제 고친단 말인다. 독일 사람들 일하는데 시간 걸리는거 알고.. 내 휴일고 생각하고, 고쳐주는 업체 스케쥴도 맞춰서 날짜를 정해야 하고.. 어휴 이 모든 걸 생각했을 때 머리가 딱딱 아팠다. 결국 일은 그 사람이 저질러 놓고, 실질적인 일은 내가 다 해야 하지 않는가? 이게 왠.. 그런데 내가 생각할 때, 한국인 학생도 마음이 안좋을 것 같았다. 또 내 마음 속으로 혼자 나쁜 일을 당했다며…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기 보다는 그 그 학생에게 독일 분위기도 보여 줄 겸, 나가서 바람도 쐴결…함께 밖에서 식사를 같이 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이 들었다. 그 분께 문자를 보냈다. “혹시, 아침 같이 나가서 드실래요? ” 그리고 우리는 좋은 브런치 카페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사실 나도 돈 아낀다고 집에서만 요리해 먹어서 여기 오래 살았지만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그리고 점심도 주변에서 가장 평점 좋은 베트남 식당을 찾아서 함께 쌀국수를 먹었다. 휴일에도 어수선한 집에서 속상해서 집에 있기가 싫었다. 옆방에 있던 학생도 똑같이 마음이 심난하지 않을 까 싶어서 또 문자를 보냈다. “혹시 시간 있으시면 호수에서 같이 배를 타러 가실래요? ” 우리는 맑은 하늘 아래 보트를 타며 심난했던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호수 주변 카페에서 그 분은 맥주 한잔, 나는 무알콜 맥주를 주문해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알고 보니 나랑 굉장히 비슷하신 분이었다.
처음엔 되게 답답하고 어이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시간을 보내 보니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특히 이런 갈등상황에도 꿍하지 않고 참 긍정적인 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랑 다른 사람 처럼 보였는데… 뭐랄 까 스피릿이 나랑 되게 비슷한 사람이었다. 나는 대학생 때 사람들끼리 몰려다니는게 싫어. 과 엠티를 가지 않았고, 흔히 말하는 그때의 시대 정신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분도.. 대학생활을 나와 비슷하게 하셨다. 무리 문화에 어울리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 오신 분이었다. 참 이상하게도 난 사람만 만나면 넉다운이 되서 집에서 쉬기 바쁜데 이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음이 불편하기는 커녕 마음이 굉장히 편안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같이 있을 때 편안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 분도 똑같이 느끼셨다고 했다. 내가 있는 도시에서는 독일에서 가장 큰 여름 호수 축제가 열린다. 한달간 계속 되며, 이 축제를 전부 돌아 보는데 반나절은 걸릴 정도로 큰 축제이다. 나는 이 분과 함께 호수 축제를 갔다. 나는 누구랑 같이 여행을 못간다. 그런데, 우리는 밤 12시 까지 놀았다. 난 그 동안 열심히 산다고 유럽에서 여행 다운 여행 한 번 가지 않았다. 이렇게 마음 잡고 쉬어 보기는 처음이었고, 이렇게 재미 있는 시간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과 10분 만 있어도 불편한 나였는데, 수 많은 남자친구들을 사귀었지만… 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만났다. 6-7시간이 넘게 함께 있으면서도 이렇게 편안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호수를 떠나기 전 호수위에 비췬 달을 한 없이 바라 보았다. 조용한 가운데 거대한 호수 위에 비췬 달을 바라보는 그분을 보면서, 그 순간에 내 마음에 굉장한 평안이 들었다. 마치.. 내 마음에 어떤 빈틈도 없이… 꽉찬 평안이 찾아왔다. 뭔가 충만하다는 것이 이런 것 같았다. 참으로 고요한 밤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두가지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독일에서 계속 살겠구나..

이렇게 함께 있는게 편안한 사람이 있다면 결혼 생활도 할 수도 있겠구나…



싱크대는 고장났지만, 사람을 얻었다…
그분과 이야기 하다 보니, 외가쪽이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고 했다. 사적인 걸 많이 물어 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교회에 다녔던 분 같았다. 나는 독일 교회 분위기를 한번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괜찮으면 독일 교회 어떤지 한번 가볼래요?” 원한다면, 내가 교회 갈 때 같이 가보자고 물어 봤다. 그리고 일요일에 함께 교회에서 예배 드렸다. 교회의 말씀은 사도행전이었다.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어느 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그쪽으로 가는 길이 막혀 갈 수 없었고, 그들은 꿈에서 다른 지역에서 “우리를 도와 달라”는 꿈을 꾼다. 그리고 바울은 막혀 있는 00쪽으로 가는 길을 바꿔 %%로 가게 된다. 이 스토리가 이 분이 우리집에 오게 된 이유와 비슷하다. 이분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집이 나오지 않았고, 차선으로 생각하던 도시였던 이곳에 내가 공고를 올리자 마자 연락해 오게 되었다. 나는 교회에 다녀오는 길에 이 분에게 설교를 해석해 주변서 이렇게 말했다. C가 우리집에 오게 된 이유와도 비슷한 이야기라고, “나는 말씀을 들으면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C가 이집에 오게 된 것도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것 아닐까 라고요.” 그분은 나에게 물었다. “혹시 하나님을 만났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어요?” 라고 말이다. 나는 내가 하나님을 만났던 간증을 짧게 했고, 이 분도 무대에서 혼자 연주할 때 하나님께서 외로워하는 자신을 품에 안아주시는 것같은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분이 가기 전에 우리 도시에서 가장 맛있다고 알려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배웅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에 또 만나기로 했다. 그 해 12월에 퀼른에서 만나 크리스 마켓에 함께 갔다. 그리고 내년에 독일에 있다면, 새해를 같이 맞이하자고 약속했다. 내 나이 30대 후반에 나이와, 배경을 넘어선 친구를 만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나는 이 사건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다고 느꼈다.

내가 이전 경험으로 사람에게서 피해 봤던 게 많았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타인에 대해서 마음을 열지 않으니, 싱크대가 타게 하셔서.. 이 분과 내가 친해 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신 것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도 고백한다 이 분이 우리집에 머물게 된 것은 하나님의 보내심이었다고…

지금도 싱크대가 탄 사건은 축복이었다. 이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생각한다. 싱크대는 고장났지만, 난 귀중한 인생의 친구를 얻었다. 사람을 얻었다.

나의 배우자 선택에 대한 힌트
나는 이 사건을 통해, 아.. 나는 나랑 비슷한 사람이랑.. 만나겠구나..라는 느낌을 직감적으로 받았다. 이건 나와 같은 관심사를 공유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뭔가 겉으로 보기에 다르더라도 뭔가 나를 보는 것 같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성경에서 돕는 베필이라는 것을 그의 바라봄 같은 도움 이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왠지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흔히 막연하게 생각하는 배우자의 조건들,. 재밌고, 매력적이며, 지적인 자극을 주고, 경제적으로 탄탄하고, 나와 관심사가 맞아야지.. 뭐 이런 조건이 아니라… 그냥 뭔지 모르겠지만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번 생각 해봤다… ㅋㅋ 휴… 절망만 나왔다.